화계사 주지 수경 스님 3월 28일부터 오체투지 순례 / 뭇 삶 아픔 껴안고 온몸 던지다


 

뭇 삶 아픔 껴안고 온몸 던지다

 

“수경 스님 3월 28일부터 오체투지 순례
“공주 신원사에서 임진각까지 230㎞ 여정
“가진 것 내려 놓고 평화와 생명 청할 것”
[2009년 03월 30일 월요일]
 

“생명의 소리를 따라 죽음과 절망의 소리를 지워버리고,

우리의 왜곡된 삶을 성찰하며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국민에게 평화와 생명의 소리를 청하고자 합니다.”


3월 28일 다시 오체투지 순례에 나선 화계사 주지 수경〈사진〉 스님이 참회로서 이 땅에 희망이란 씨앗을 심겠노라 발원했다.

 

그리고 오체투지는

“오로지 살고자 하는 길이자 기도”

라며 목숨 건 순례를 예고했다.

 

수경 스님은 먼저 자신의 삶을 반추했다.

스님은

“40년 스님 노릇을 하며 정도의 길을 걸어왔나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진솔하게 계를 다 지켰나?

체면 차리고 직업으로서 스님 노릇만 해온 것 같다.

감당이 되지 않았다”

고 자신을 책했다.


계속된 스님의 고백은 솔직했다.

스님은

“자기합리화 하고 대접받으며 살아갈 것인가.

사회에서 성직자로서의 길이 무엇인가 몇 개월 씨름했다”

“그 동안 산에 사는 도둑이었더라”

고 참담한 심정을 털어놨다.

 

스님은 환경보호라는 시대적 요구에 뭇생명과의 상생을 주제로 불교적 대안을 제시하려던 환경운동에 대한 부담도 상당했다고 전했다.

 

세간의 주목을 받으면서 대접 받았던 삶이라고 참회했다.

그러나 스님은

“대접 받으면 스님으로서는 끝이다”

라며

“적당히 타협하며 살지 않겠다.

마지막 삶을 치열하게 살고자 한다”

고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그리고 오체투지 순례가 사회와 뭇생명들의 생명과 평화를 기원하며, 자연과 사람의 만남과 화해, 사람과 사람의 만남과 상생, 사회와 사회의 만남과 공존을 염원하는 기도임을 다시 새겼다.

 

수경 스님은 불교계에도 애정 어린 시선을 담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먼저 잘잘못을 드러내놓고 참회하며, 시대의 아픔을 함께해야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고 경책했다.


스님은

“국토를 파헤쳐 경제난을 극복하겠단 대통령을 초대,

호텔에서 법회를 하는 것이 과연 불교인가”

라고 반문한 뒤

“성직자가 왜 필요한지,

그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 암담하다”

고 토로했다.

 

스님은 또

“조계종은 지난해 정부를 비판했던 사실을 잊고 하루아침에 돌변해 정부의 홍보기관까지 한다”

“지역 사찰이 제 역할을 못해 목사와 신부가 그 지역의 어른이 된 현실에서 본말사 주지는 정부 예산 많이 가져오는 것이 능력으로 비춰지고 있다.

참회해야 한다”

고 개탄했다.

 

그래서 수경 스님은 다시 땅에 온몸을 던져 희망의 길을 묻고자 한다. 모든 문제들이 정리되지 않으면 스스로가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자 목숨 건 순례인 것이다.

상구보리 하화중생하는 불교가 되길 바라는 염원인 것이리라.


“이런 고민들을 안고 남은 생을 후회 없이 살아가려는 노력입니다.

그 기도가 오체투지입니다.

조금이라도 양심적으로 사는 사회가 되길 기원하는 기도입니다.

시대의 등불, 고통을 함께하는 종교가 바로 불교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화계사 주지 수경 스님과 전주 평화동 성당 문규현 주임신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 전종훈 신부 등 순례단은 3월 28일 공주 신원사 중악단에서 임진각까지 오체투지에 나섰다.

 

순례단은 천안, 평택, 오산, 화성, 수원, 의왕, 안양, 과천, 서울을 거쳐 임진각까지 약 230km의 거리를 하루 4km씩 삼보일배로 74일 동안 생명과 평화, 상생의 기도를 올릴 예정이다.

 

“함께하는 수많은 생명과 평화의 작은 몸짓들과 함께 길을 만들면서 가고자 합니다.

그 길에서 생명과 평화를 위한 작은 소리와 몸짓이 세상을 바꾸는 밀알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오체투지 순례단 기도문 중)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 나서다

 

<특별기고>오체투지 순례 떠난 수경 스님
 
 

 

 

3월 28일 공주 신원사 중악단에서 천고제를 시작으로 임진각까지 230여 km의 오체투지 순례에 나선 화계사 주지 수경<사진> 스님이 본지에 특별 기고문을 보내왔다.

 

스님은 수행자의 한 사람으로서 대접받던 삶을 반추하고 자신을 더 낮춰 세상을 바라보고자 오체투지에 나선다는 내면의 고백을 한 자 한 자 간곡히 써내려갔다.

 

공업 중생으로서 모든 생명이 평화롭고 서로를 연대하고 배려하는 세상을 무한히 자신을 낮춰가며 길 위에서 찾고자 하는 스님의 염원을 게재한다.

 

다음은 수경 스님 기고문 전문.

 

오체투지 기도 순례를 떠나며

 

다시 길 위에 섭니다.

나의 온 숨을 대지에 바치는 오체투지 순례에 나섭니다.

나의 숨결이 바람결을 따라 눕고, 나의 육신이 물처럼 대지를 흐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누구에게나 꿈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든 그 꿈의 궁극은 ‘행복’일 것입니다.

나도 행복해지기 위해서 출가를 했습니다.

하지만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나이가 벼슬이라고, 절집 밥을 축낸 햇수가 늘면서 대접 받을 일이 많아졌습니다.

까닥 정신을 놓으면 수행자로서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게 생겼습니다.

하여 나는 ‘환계(還戒)’의 심정으로 오체투지의 길을 떠납니다.

 

저의 허물을 제대로 보고 최소한 제 자신을 속이지는 말자는 참회의 기도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바로 세울 수 있다면, 시절 인연으로 고통 받는 여리고 약한 사람들과 말 못하는 생명의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건 오로지 ‘돈’을 찾아 헤매는 벌거벗은 욕망입니다.

모두가 ‘경제 위기’ 타령입니다.

죽겠다고 아우성입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사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위기는 모두가 강남에 최고급 아파트를 사고, 모든 아이들이 국제중, 특목고, 명문대에 진학해서 대기업에 취직해야만 해결될 성질의 위기입니다.

‘욕망의 위기’인 것입니다.


만약 이명박 정부가 전국토를 공사판으로 만들어서 일시적으로나마 현재의 경제 위기를 넘기면 청년실업, 비정규직, 빈부 양극화, 빈부의 대물림 문제가 해결될까요?

 

그렇게 믿는다면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사회적 모순을 비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승자 독식’ 구조를 인정한 상태에서 내가 승자가 되지 못한 푸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문제의식’은 없고 ‘위기의식’만 난무하는 한국 사회


지금 우리 사회는 ‘위기의식’만 팽배할 뿐 위기의 원인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습니다.

최소한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금도도 없습니다.

도덕과 윤리의식의 부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 전 부문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진짜 위기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진보와 보수, 여야, 대통령과 국민 모두가 서로를 속이고 있습니다.

한 예로, 청년 실업의 문제는 현 정부의 잘못이 아닙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더욱 아닙니다.

 

모든 대학이 모든 학생들에게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게 한다고 칩시다.

모두가 토익 점수 만점이라고 칩시다.

결과는 현재 상태와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문명사적으로 당연히 도래할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더 벌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과 규모의 조정을 통해서 삶 자체를 재편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부자도 대기업도 불행해집니다.

극빈층이 늘어남으로써 자신들의 부를 지속시킬 물적 토대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국민을 ‘부자 만들어 준다’고 한 이명박 대통령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판을 합니다.

낯간지러운 일입니다.

서로 속이지 않았습니까?

 

설령 모두 부자가 되지는 못한다 치더라도 최소한 부자와 기업이 잘 되면 떡고물이라도 많이 떨어지겠지 하고 기대했기 때문에 이명박이라는 분이 대통령에 당선된 겁니다.

어차피 지킬 수 없는 약속이라는 걸 알았으면서 이제 와서 비판을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비판의 초점도 빗나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비판 받아야 할 점은 정직성입니다.

막상 대통령이 되고 보니 현재의 위기는 문명사적 전환의 국면에서 필연적으로 닥칠 상황에 처한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하고, 가진 자와 대기업의 도덕적 책무 이행과 양보를 전제로 다수의 국민에게 고통 분담을 호소하고 동의를 구했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사회적 합의이고 국민 통합의 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는커녕 눈과 귀를 닫고 오직 돈을 풀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언론과 시민 단체, 지성계와 종교계의 책무가 중요한데도,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으로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기에 급급합니다.

그 비판이 정당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대안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 나라 지성계에 원로가 있는지도 의문이 듭니다.

있다면 지난 촛불 정국의 정점에서

“이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자.

이제부터 우리 내면의 혁명을 이루자.

그래서 세상을 바꾸자.

그것을 위해 써야 할 에너지를 소진시키지 말자”

하고 설득해야 했습니다.

 

소위 자기 진영으로부터 욕을 먹더라도 어른다운 곡진함으로 길을 열어 보였어야 했습니다.


종교계와 성직자는 어떻습니까.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불교계만 보자면 시대의 고통과 온 생명(중생)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노력이 없습니다.

 

한국 불교는 부처님 가르침으로부터 너무 멀어졌습니다.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길과 반대로 갔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 또한 이러한 비판을 받아야 할 당사자의 한 사람임을 잘 압니다.

 

‘부드러운 관계’, 그것이 사람의 길


이러한 문제의식을 안고 오체투지를 떠납니다.

우선 수행자로서 잘못 살아 온 허물을 참회하고 나를 바로 세우는 일이 시급해서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공업 중생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진정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모색을 하는 작은 계기라도 만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단 한 번이라도 오체투지를 경험해 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평화적 시위’ 차원이 아닙니다.

지난해에 지리산에서 계룡산까지 오체투지를 통해 지렁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절절히 느낀 바는, 누구나 알고 있는 소박한 삶의 진실입니다.

 

사람이 별 것 아니라는, 산다는 것이 별 것 아니라는 새삼스런 자각이었습니다.

그러한 ‘해방 체험’을 공유하자는 것입니다.

자유와 행복의 의미를 정직한 몸의 언어로 새겨 보자는 것입니다.


좀 거창하게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서 오체투지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거창할 게 없습니다.

추상적인 길, 실현 불가능한 이상적인 길도 아닙니다.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현재보다는 덜 폭력적으로만 바꾸어도 세상은 달라질 것입니다.

최소한 나의 행동이 상대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 않는다면, 하나 더 가지기 위해 상대를 짓밟지 않는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아름답고 평화로워질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길이 아니면 그 길을 어디에서 찾을 것입니까. 나는 세상의 모든 성현과 종교의 가르침이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 믿음을 튼튼히 하기 위해 오체투지의 길을 나섭니다.

모두들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2009년 봄
화계사 주지 수경 합장

   최호승 기자 sshouto@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