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E만 호강”…한국서 몸살난 웹브라우저들

2008/09/09 09:30:06 AM
[지디넷코리아]‘삼키려니 고달프지만 버리긴 아깝다’

한국 인터넷 시장이 비주류 웹브라우저들에게 ‘계륵’이 됐다. 시장 자체가 유독 별나 적응에 진통이 따르고 있는 것. 하지만 한국은 나름 ‘인터넷 강국(?)’이기에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에 일부 웹브라우저들은 유례를 찾기 힘든 수술을 한국서 받고 있다. 좋게 말하면 현지화 전략이지만, 앵글을 약간 돌리면 울며겨자먹기로도 보인다.

■ “한국만 오면 웹표준 안통해”
구글이 이달 내놓은 ‘크롬’이나 모질라재단의 '파이어폭스', 마이크로소프트 '익스플로러8(IE8)' 등은 모두 한국에서 사용하기 힘든 브라우저다. 잘나간다는 포털도 깨져 보이는가 하면 금융거래는 거의 불통이다.

하지만 이들 웹브라우저를 비난하는 이는 거의 없다. 특정 브라우저에 종속되지 않는 웹표준에 충실했을 뿐이다. 웹표준은 구글이나 모질라재단 등 오픈소스 진영이 이끌고 있고 해외에선 메가트렌드로 통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엇박자다. 'IE중심주의'가 건재한 가운데 웹표준을 외면하는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인터넷 전문가들은 나름 IT 강국이라 자부하는 나라 중 웹표준과 가장 거리가 먼 곳으로 한국을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웹표준을 모른 척 하는 특이 사례로 한국 실정이 외신에 다뤄지는 일도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액티브X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액티브X는 IE에서 제공하는 파일 유포 툴로 금융권과 다수 웹사이트에서 널리 쓰인다. 이는 액티브X가 없는 다른 웹브라우저로는 금융거래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웹표준을 추구한다는 유명 웹브라우저들이 한국무대 적응을 위해 액티브X와 공존을 추구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 크롬·파이어폭스도 한국형 수술
심지어 MS를 주적으로 삼은 구글도 한국에서는 액티브X를 끌어안으려 한다.

구글은 아직 출시일이 미정인 크롬 정식판 한국어 버전에 대해 액티브X와의 호환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선언했다. 벌써부터 구글 본사는 액티브X를 사용하는 주요 한국 사이트들을 연구하고 있다.

여기에는 국내 사정에 밝은 구글내 한국계 엔지니어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코리아 정김경숙 상무는 “액티브X 호환은 크롬의 한국 안착을 위해 피할 수 없는 관문으로 보인다”며 “웹표준 만큼 한국 사용자들의 편의도 중요하기에 나온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구글의 이번 전략이 액티브X 툴을 크롬에 직접 탑재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액티브X가 꼭 필요한 사이트와 크롬이 연동할 방법을 찾을 뿐이다. 하지만 웹표준 진영에서는 구글의 이같은 행보가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웹표준을 부르짖어온 구글과 액티브X는 물과 기름처럼 공존할 수 없다는게 당연하게 여겨졌다.

모질라재단의 파이어폭스도 크롬과 비슷한 진통을 겪고 있다. 네티즌들이 IE 탭을 파이어폭스에 연결해 국내 사이트를 이용하고 있는 것. 액티브X를 지원하지 않는 파이어폭스를 국내서 어떻게든 활용해 보려는 고육책이다.

단, 이 기능은 모질라재단이 아닌 대만 업계에서 만든 것으로 파이어폭스 버전에 맞춰 업그레이드까지 되고 있다. 모질라재단은 이같은 편법(?)에 대해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한국 모질라커뮤니티 윤석찬씨는 “파이어폭스는 오픈소스 기반이기에 누구나 확장기능을 만들 수 있다”며 “IE 연동에 대해 모질라재단이 이렇다 할 입장을 밝힐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 금융권, IE는 '극빈대우'
반면 올 연말 등장할 IE8은 크롬이나 파이어폭스처럼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 웹표준에서도 그렇다. 한국 사이트들이 IE의 변화에 맞춰 스스로를 뜯어 고치겠다고 들고 일어났기 때문. MS의 한국 내 영향력이 새삼 확인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이렇다.

MS는 최근 자기네 기술 중심의 시장 전략에서 한발 물러나 웹표준 진영과 협력을 모색하는 중이다. IE8에서는 액티브X 기능을 줄이고 본격적인 웹표준 기술을 탑재하면서 모처럼 칭찬도 듣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행보는 웹표준을 무시하고 MS만 믿고 있던 한국에 날벼락으로 떨어졌다. 현 상황에서 사용자들이 IE8로 대거 업그레이드 한다면 금융권을 중심으로 한 주요 사이트들은 무용지물로 전락할 수 있다. 제2의 인터넷 대란 발생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미 IE8 베타버전에서 국내 주요 포털과 금융사이트가 깨져서 보이는 것이 확인돼 업계는 초긴장하는 모습이다. 한국MS는 웹표준을 지키지 않은 국내 사이트들이 IE8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코딩 수정이 필요하다고 8월 발표했다.

이에 국내 금융권은 최근 한국MS와 긴급 접촉을 갖고 대책마련에 들어갔다. 금융감독원·금융보안연구원 등 기관들이 IE8과 국내 금융사이트 간 호환성 테스트를 한창 진행하고 있다.

금융보안연구원 성재모 팀장은 “국내 주요 사이트들이 IE8과 호환성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한국MS와 기술적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단, 일각의 예상처럼 MS가 한국이라고 특별한 IE8을 준비하지는 않는다. 한국MS 관계자는 “IE는 어느 나라나 같은 기능으로 제공돼야 한다”며 “한국에서는 특수 상황을 감안해 금융업계의 IE 맞춤 작업에 최대한 협조, 혼란을 방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웹브라우저 입장에서는 부러울 만치 한국서 호강(?)하고 있는 IE다.

김태정 기자(tjkim@zdnet.co.kr)